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리자베스 2세 (문단 편집) == 여담 == * 재위기간을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마친''' 국왕이다. [[한국]]에서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즉위하였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에 사망했다. 전자는 한국에 영국군이 직접 참전하였고, 후자는 영국이 참전은 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군에 지원을 하고 있는 만큼 두 전쟁 모두 영국이 개입된 전쟁이다. * 개인적인 정치 성향이 알려진 적은 거의 없지만, 첫 총리이자 멘토였던 [[윈스턴 처칠]]과 아버지 [[조지 6세]]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 보수주의]] 성향에 가까웠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수했던 [[마거릿 대처]]와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오랜 기간 사실처럼 퍼져 있다. *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꿈꿨다고 하며 가정교사에게 '''"나중에 시골에서 말을 키우면서 사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필립 공과 [[몰타]]에서 보냈던 신혼 생활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당시 엘리자베스는 일반적인 해군의 아내의 삶을 살았는데,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왕족이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살아본 것'''이었다. 다른 장교 부인들과 어울려서 살롱에도 가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직접 현금을 가지고 다니며 계산까지 했다고 한다. 다만 돈 계산이 익숙치 않았는지 엘리자베스의 행동이 다소 굼떴다고 한다. 운전사 없이 직접 승용차 운전을 하고 다니기도 했으며, 보트를 타거나 해안가를 산책하고, 일광욕을 즐기고 피크닉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저녁에는 피니시아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춤도 추었다. 하지만 몇년 후 엘리자베스는 여왕이 되었고 이런 평범한 일상을 다시는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이 평범한 삶을 꿈 꾼 이유는 백부인 [[에드워드 8세]]가 [[월리스 심프슨|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조지 5세]]의 재위 당시 엘리자베스는 왕위를 얻기에는 멀고도 험한 계승순위 3위였는데[* 1위 조지 5세의 장남으로 왕세자였던 [[에드워드 8세]] - 2위 에드워드가 자녀가 없는 관계로 차남이자 당시 요크 공작이었던 [[조지 6세]] - 3위 조지 6세의 자녀 중 아들이 없으니 장녀인 엘리자베스 2세 - 4위 그 동생인 [[마거릿 로즈|마거릿 공주]].] 이마저도 에드워드 8세가 정상적으로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다면 그의 자녀가 서열 1위가 되었을 것이며, 자신의 아버지가 아들을 낳는다면 역시 서열이 밀리게 되다보니 왕위는 아예 생각치도 않았던 것.[* 단적인 예로 엘리자베스 2세의 사촌동생인 [[켄트의 알렉산드라 공녀]]도 엘리자베스 여왕과 동일하게 [[조지 5세]]의 손녀였으나, 현재까지 왕족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왕위계승서열에서도 한참 멀어져 있다.] 갑자기 아버지가 왕으로 즉위하고 자신이 왕위 계승 서열이 1위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 [[조지 6세]]도 갑작스러운 형의 퇴위와 자신의 즉위가 아버지 사후 1년만에 이루어지자, 즉위를 거부하다가 끝내 모후인 [[테크의 메리]]에게까지 달려가 하소연할 정도로 심히 당황했다. 그만큼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2세 모두에게 왕위는 생각치도 못했던 자리였던 것.] 아이러니하게도 각주에서 설명한 조지 5세 당시의 계승서열(에드워드 8세 - 조지 6세 - 엘리자베스 2세)은 결국 변하지 않고 모두 순서대로 즉위했다. * 젊은 시절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홈비디오를 촬영하는 것을 즐기는 [[얼리 어답터]]였다. 덕분에 [[찰스 3세]]와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앤 공주]]의 어린시절 모습부터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과 [[마거릿 로즈|마거릿 공주]], [[필립 마운트배튼]]이 [[밸모럴 성]]에서 함께 휴가를 즐기는 모습, [[대관식]] 당일 버킹엄 궁전 내부 모습까지 희귀한 영상들을 많이 남겼다. 이 당시 여왕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제작된 다큐멘터리까지 있을 정도. [[https://youtu.be/prUh0HDTO04|#]] 아들 [[찰스 3세]]는 후일 "부모님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찍으시는 것을 좋아하셨다"라고 회고했다. 1950년대 당시 가정에 필름 카메라 보급률이 낮았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앞서나갔던 셈이다. * 가장 잘하는 요리는 [[팬케이크]]였다고 한다. 물론 평소에는 요리사들이 식사를 만들기 때문에 여왕은 요리를 할 일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윈저 성]]에 초대해 공주들이 직접 음식을 대접하는 행사가 열렸는데, 이때 윈저 성의 요리사로부터 직접 팬케이크 레시피를 배웠다고 한다. 국왕이 된 후인 [[1959년]]에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밸모럴 성]]에 방문했을 때 여왕이 직접 팬케이크를 만들어줬는데, 팬케이크 맛에 반한 아이젠하워가 레시피까지 물었다고 한다. 이에 여왕이 몇 달 뒤에 자필로 레시피를 세세하게 적어 보냈다고 한다.[* 막상 [[필립 마운트배튼|부군]]은 “'''영국 여자는 [[영국 요리|요리를 못한다]]'''”는 망언을 내뱉어(…) 의도치 않게 여왕에게 한 방 먹였다.] *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어머니]]처럼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음주를 즐겼는데, 하루에 4잔의 칵테일을 마시는 것이 루틴이었다. 매일 점심 식사 전에는 레몬과 얼음을 곁들인 듀보네 칵테일을, 점심 식사 때는 와인을 한잔 마셨다. 밤에는 드라이 마티니를 마셨으며, 잠들기 전에는 블랑저나 랑송과 같은 프랑스산 샴페인을 마시며 잠에 들었다고 한다. * 엄청난 '''[[일 중독]]'''이었다고 한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가도 "빨간 상자[* 매일 [[영국 총리|총리]] 및 [[영연방 왕국]] 총독들의 국정 상황 브리핑과 함께 국왕이 승인하도록 보고되는 정부 공문서와 군사 정보, 방첩 정보 등 중요 서류들이 담겨있는 상자이다.]한테 빨리 가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리를 뜨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주말이나 휴일, 심지어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순방을 나갈 때면 기차나 비행기 안에서 업무를 봤다고 한다. 지인들이 "잠시 쉬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면, '''"조금이라도 쉬면 일이 밀려서 힘들어진다"'''고 대답했다고.[* 왕비나 부군과 함께 문서를 처리했던 이전 국왕들과 달리, 엘리자베스 2세는 부군 [[필립 공]]과 업무를 나누지 않고 어마어마한 양의 문서를 매일 혼자서 처리했다고 한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쉰다면 일이 산더미처럼 밀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사망 직전에도 [[영국 추밀원|추밀원]] 회의에 꼭 참석해야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 즉위명은 영국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국왕인 [[엘리자베스 1세]]의 즉위명을 그대로 세습받아서 엘리자베스 2세가 되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2세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신과 달리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떠난 탓에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 영국에서는 군주의 이름을 따서 시대명을 칭하는 관습이 있는데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기간은 [[엘리자베스 시대]](Elizabethan era),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기간은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라고 하는 식이다. 그래서 [[월스트리트 저널]], [[CNN]], [[이코노미스트]], [[더 가디언]] 등의 언론들은 여왕 사망 후 기사에서 엘리지베스 2세의 재위 기간을 ''''[[제2차 엘리자베스 시대]]''''(second Elizabethan era 또는 Second Elizabethan Age)라고 칭하기도 했다. || [[파일:200dede7be2fbdb82109746db168ad61.jpg|width=100%]] || || 1952년 즉위 기념 촬영.[* 해당 사진은 애플이 메인 페이지에 올린 추모 배너에 사용되었다.] || *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다수의 세계인들에게는 말년의 구부정하고 인자한 할머니 모습이 가장 익숙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기품 있는 외모를 자랑했다.[* 남편인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과 여동생인 [[마거릿 로즈|마거릿 공주]]도 젊은 시절 미남미녀로 유명했다.] 세월이 흐른 장년기에도 귀부인의 전형같은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였다. * 왕실 친척들에게 정이 많다는 평이 따른다. 윈저 왕조의 방계인 글로스터 공작가[* [[조지 5세]]의 3남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헨리 왕자]]의 가문.]와 켄트 공작가[* [[조지 5세]]의 4남 [[켄트 공작 조지 왕자|조지 왕자]]의 가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숙부 쪽 자손 가계이다.]의 사촌들이 바라는 건 웬만해선 뭐든지 들어주려고 했으며, 논란을 일으키는 친척들도 묵묵히 지원하며 감싸주는 편이다. 오죽하면 본인의 첫째인 [[찰스 3세|찰스 왕세자]]와 둘째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앤 공주]]는 뒷전이라 비난도 많이 받았을 정도. 엘리자베스 2세는 첫째와 둘째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어린 나이에 즉위해, 첫째와 둘째는 많이 보살펴주지 못했다. 반대로 즉위한 이후에 낳은 늦둥이인 [[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 에드워드|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안토니 리처드 루이|에드워드 왕자]]는 엄청나게 예뻐했다. * 일반인들 사이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주로 다이애나 스펜서와 찰스 3세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지 못한 것과 다이애나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을때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 왕정이 폐지될 뻔 한 것으로 뽑지만 엘리자베스 2세 본인은 자신의 대표적인 흑역사로는 [[애버밴 참사]] 당시 해롤드 윌슨 총리의 조언대로 참사현장을 방문하는 것을 거부했었던 것으로 꼽는다고 한다. 당시 책임의 소재는 물론 전국석탄청 쪽에 있었지만 국가의 상징으로서 국민들의 아픔을 위로해주어야 하는 직무를 소홀히 했다고 여당인 노동당과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었다. 이때의 교훈 때문인지 훗날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사고]]때 테레사 메이 총리가 '''고작 8km 떨어진 총리관저에서 보안 문제를 핑계로 뻐기며''' 피해자들과 현장 인력을 만나길 거부하고 있을때 사고 다음날 아침 현장을 윌리엄 왕세손과 함께 방문하여 사고에 투입되었던 구조대원들의 수고에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피해자 가족들과 해당 지역 주민들을 만나 위로의 뜻을 전했다. 심지어 이때 런던광역경찰청의 레인지로버 1대만 대동하고 방문했던 터라 사람들은 여왕과 윌리엄이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여왕의 행차를 알았다고 한다. 덕분에 국가 최고원수는 사고 다음날 최소의 경호인력과 함께 직접 찾았는데 보안문제를 운운하는 메이에게 노동당과 보수당 양쪽에서 비난이 쏟아졌고 사고 발생 48시간이 지나서야 허겁지겁 만났지만 이때도 책임과 사과의 메시지를 내지 않고 회피하자 시민들에게 ''''Coward'''', 즉 겁쟁이라고 욕을 들어먹었다. * 치세 동안 크리스마스 정기 메시지를 제외하고 대국민 메시지를 총 5번 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LMGFuSnUiI|첫번째 메시지는]] 1991년 2월 24일 영국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걸프전]]에서 사막의 기병도라는 작전명 아래 지상작전을 실시하였을 때, [[https://www.youtube.com/watch?v=CTpcuXbJMcM|두번째 메시지는]] 1997년 9월 4일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으로 왕실의 미지근한 반응에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토니 블레어]] 총리가 스펜서 가족장을 왕실장으로 전환하여 진행할 것을 설득한 이후, [[https://www.youtube.com/watch?v=A4yF0eifsIA|세번째 메시지는]] 2002년 4월 8일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별세하고 난 이후, [[https://www.youtube.com/watch?v=uDQu-HJGhuM|4번째 메시지는]] 2012년 7월 4일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2klmuggOElE|마지막 메시지는]] 2020년 4월 6일 코로나 펜데믹 발생으로 영국 정부가 봉쇄를 선언한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냈었다. * 일국의 여왕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꽤나 자주 [[영국]]의 부자 스타들의 [[전투력 측정기|재력 측정기]]이자 영원한 기준이 되곤 한다. 예를 들어 [[폴 매카트니]]는 전재산이 여왕보다 많다던지[* 2012년 기준, 전 세계 음악계 부자 3위.] [[J. K. 롤링]]의 재력이 세계 555위로 여왕보다 높다는 식으로 자주 이름이 거론된다. 엘리자베스 2세의 보유 재산은 2015년 기준, 약 '''4억 2,500만 달러'''(약 5,06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9092122465&code=970205|추정된다.]] ||[[파일:external/english.chosun.com/2011042501060_2.jpg|width=300]] ||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AKR20100730199951005_10_i.jpg|width=300]] || * [[대한민국]]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1999년]] [[4월 19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맏아들인 [[찰스 3세|찰스 왕세자]]도 7년 전인 1992년에 [[노태우]] 대통령의 공식 초청으로 방한한 적이 있다.] 당시 여왕은 서울 인사동 거리, [[이화여자대학교]] 그리고 [[안동시|안동]]을 방문해 [[봉정사]][* 국보 제 15호], [[하회마을]] 등 몇 군데 명소를 방문했는데, 특히 하회마을에서 [[한옥]][* 풍산 류씨 문중의 고택 '충효당']을 방문할 때 화제를 모았다. 서양에서는 발을 밖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데, 좌식생활을 하는 한옥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 까닭이었다. 여왕은 [[한국 문화]]를 존중해 맨발로 들어갔고, 신발을 벗자마자 외신 기자들이 미친 듯이 플래시를 터뜨렸다. 이에 대한민국 기자들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어리둥절해 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하고 고추장과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지켜보는 등 한국 문화를 체험하기도 했다. 안동소주 명인인 조옥화 여사가 마련한 생일상도 대접받았다. 또 한국의 문화와 어린이들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 방문 날짜에 73회 [[생일]]인 [[4월 21일]]이 끼어 있어서 간 김에 한식 전통 생일상도 받았다. 안동소주 기능보유자인 [[인간문화재]] 조옥화 여사가 상차림을 맡았다. 국왕의 방문인 만큼 생일상 메뉴는 주로 과거 조선 국왕의 수라에 오르던 궁중음식들로 구성되었다. 과일, 국수, 편육, 찜, 탕 등 47가지에 달하는 음식으로 된 상차림. 조 여사는 그 생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11명의 도우미와 함께 사흘 밤낮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다른 건 그럭저럭 어렵지 않게 끝마칠 수 있었지만 문제는 60㎝에 달하는 높이의 떡꽃 화분.[* 나뭇가지에 갖가지 동물 형상의 떡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전통음식. 궁중이나 지체 높은 양반가에서도 회갑이나 칠순 등 특별한 날에나 겨우 볼 수 있었던 진귀한 음식이다.] 높이 20㎝의 놋쇠 화분에 매화나무 가지를 심은 뒤 고추와 새, 토끼, 나비 등 갖가지 동물 형상의 떡을 빚어 옛 음식 그대로 재현했다. 이 음식을 만드느라 두 차례 리허설을 거쳤으며 최종 작품은 여왕의 생일 전날 저녁부터 시작해 당일 아침까지 지극 정성을 기울인 뒤에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조 여사는 여왕보다 4살 연상으로 당시 77세의 나이였지만 일생의 영광이라며, '여왕께서 한국을 찾아주신 것만 해도 영광스러웠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생일상을 차렸다'고 이후 말했다. 처음에는 영국 대사관 측이 생일상을 사양했으나 안동시 측이 "일국의 여왕께서 생일을 맞이하셨는데 그냥 지나치는 것은 양반 고을의 법도가 아니다"라고 하여 어렵게 성사됐다고 한다. 조 여사는 이에 화답하고자 생일상 마련에 드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직접 부담했고 그 일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그때 차려진 음식의 모형을 만들어 하회마을 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때 대한민국 [[사과]]와 [[배(과일)|배]]를 맛보고는 감탄하여 이후 영국에서 매년 대한민국산 사과와 배를 공수해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사과는 안동에서 여왕에게 특별히 진상할 품종을 개발해 보낼 정도였다.[* 실제로 여왕의 생일 파티에 여러 차례 사과가 보내졌으며, 사과를 전달받은 여왕이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안동 농협 측에서는 [[영국 왕실 인증 허가 브랜드|로얄 워런트]] 인증까지 추진했으나 여왕이 사망하면서 무산되었다.] 3박 4일 일정으로 사용할 의전 차량으로 [[쌍용 체어맨/1세대#s-2.1.1.1|대우 체어맨]](쌍용 체어맨)[* 당시는 쌍용이 대우의 자회사였어서 3분할 그릴을 단 대우 체어맨이었다. 당시 대우의 워딩 연구소가 영국에 있었던 것도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때는 [[현대 에쿠스|에쿠스]]가 데뷔하기 4일 전이어서 그 정도 길이를 가진 차가 체어맨(리무진)밖에 없기도 했다.]을 선택했다고 한다. 남편인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은 [[현대 다이너스티]] [[리무진]]을 탔다.[*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가장 큰 차는 다이너스티였다.[[현대 에쿠스|에쿠스]]는 여왕이 방문한 뒤 4일 뒤에 시판된다.] * 하지만 환영만 받는 것은 아니라서,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연방 국가를 방문하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인도]]를 방문했을 때는 일부 [[인도인]]들이 야유하며 식민지 시절 자행된 학살과 약탈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영어]]로 '영국의 위대한 암캐 여왕'이라 적힌 걸개를 들고 가는 곳마다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카퍼레이드를 하며 손을 흔들고 있는 여왕을 향해 달걀을 던지기도 했다. 인도 정부는 이들을 물론 처벌하지 않았고, 영국 언론은 "인도가 변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1970~80년대만 해도 여왕이 인도를 방문하면 인도는 식민지 시절 그대로 꼼짝도 못 했고, 인도도 [[국력]]이 강해지면서 식민지배의 앙금을 어느 정도 풀게 된 것이다. * 1986년 4월 영국을 방문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여왕은 한국의 안보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분단 당시의 상황을 아는 세대와 [[공산당]]을 모르는 젊은 세대 간에 인식의 차이가 심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전두환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대한민국|공산당의 실상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시위]]를 하곤 하지만, 지금도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넘어온 장년들이 많아 공산 세력의 진상을 알리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 1986년 [[뉴질랜드]] 방문 당시 퍼레이드 도중 시민이 던진 계란을 맞은 적이 있다. 당시 엘리자베스는 직접 계란 노른자로 얼룩진 코트를 닦으며 상황을 수습했으며, 이후 진행된 만찬 환영사에서 '''"내 아침식사를 위해 뉴질랜드 계란을 준비해주었군요"'''라고 농담을 던져 참석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https://youtube.com/shorts/TDDY6Qeu4s4?feature=share|#]] * [[공화주의]]자들에게는 영국 왕실 전체가 기생충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영국에서도 왕정 폐지에 대한 여론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일례로 [[가디언]] 지에서는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고는 "For republican"이란 단추를 만들어 이 기사가 눈에 안보이도록 하는 편집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다시 여는 것은 "근왕파" 단추. 하지만 동시에 결혼식날 [[파업]]을 한다고 "저런 반역도당" 같은 반응이 나오는 나라가 영국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왕실을 유지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비용 문제 때문에 저런 비아냥을 듣는데,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00924000569|여왕이 빈민 구제기금을 왕실 열병합 발전설비 보수비로 사용하려다 정부가 반발 여론을 의식해 거부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2012년에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3&aid=0002352163|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여왕에게 6,000만 파운드(약 1,050억 원)짜리 새 왕실 요트를 헌정하자는 제안이 나와 논란이 벌어졌다.]] 게다가 이 제안을 한 사람은 [[마이클 고브]] '''교육장관'''인데, [[유로존 위기|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학교 예산까지 긴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비난이 심했다. 이후 2016년 [[브렉시트]]가 확정되자 다시 왕실 요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영연방 국가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파일:external/4.bp.blogspot.com/Img214049253.jpg|width=300]] || [[파일:external/znn.india.com/O-Ceremony-28july-DH-18.jpg|width=300]] || || [[1976 몬트리올 올림픽]] 개회식(1976.7.17.) || [[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2012.7.27.)[* 여왕 왼쪽에 있는 사람은 [[토마스 바흐]] 현 IOC 위원장이다. 다만 2013년 9월에 취임했으므로 당시에는 위원장이 아니었다.] || || [youtube(1AS-dCdYZbo)] || || [[다니엘 크레이그]]와 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 영상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초 개회식 제작진 측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같은 옷을 입은 대역을 출연시키려고 했는데, '''여왕이 직접 출연하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당시 여왕의 깜짝 등장과 자연스러운 연기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단, 뛰어내리는 스턴트는 대역이 했다. || * 주최국 국가원수가 개회선언을 하는 관례에 따라,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때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개회선언을 했다. [[몬트리올]]은 [[퀘벡주]]의 최대도시로, 프랑스어가 단독 공용어이기 때문이다.], [[2012 런던 올림픽]]의 개회선언을 했다. 또 [[1956 멜버른 올림픽]]은 여왕을 대신해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이 개회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영국이 아닌 영연방 국가에서 개최되는 올림픽 즉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여왕이 아니라 [[총독]]이 개회선언을 했다. 이들 영연방 국가들이 같은 군주를 모시지만, 엄연한 독립국으로서의 면모가 강화되어 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2013년 4월 8일, [[영국 총리|영국 71대 총리]]인 [[마거릿 대처]]의 사망에 큰 슬픔을 드러내며 유족에게 조의를 표했고, 대처의 장례식을 [[국장]]보다 한 단계 낮은 군장 규모로 치를 것을 명했다.[* 모친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 첫째 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다이애나 비]]와 동일한 수준이다. 대처 본인이 "장례를 조촐하게 치러달라."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 [[인터넷]]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인 1976년 3월 26일에는 [[이메일]]을 최초로 보낸 군주로 기록됐으며, 2014년 10월 24일에는 [[트위터]]에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41024224907785|생애 첫 트윗을 올렸다.]][[https://twitter.com/RoyalFamily/status/525596327674400768?t=94c21CzcWTijXAXO23qbfg&s=19|#]] * 2015년 6월 3일, [[BBC]] 기자의 실수로 '여왕이 사망했다'는 글이 트위터 계정에 올라왔다가 삭제되는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0604082205616|해프닝이 있었다.]][* 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의 사망 기사를 쓰나 싶겠지만, 언론계에선 신속한 뉴스를 위해 일어날 확률이 높은 기사를 속보를 위해 미리 써놓는 경우가 많다. (속칭 "가라" 기사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엄청난 거물급의 재판결과는 보통 양쪽 다 써놓으며, 유명인이 투병 중에도 미리 준비해놓는 것이다. 해당 인물의 정확한 사인이나 판결, 날짜 등은 비워 놓고 뒤에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미리 써놓는 것이다. 영화 <슈퍼맨 리턴즈>에서 슈퍼맨이 중상을 입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나자 데일리 플래닛의 페리 화이트 편집장은 "슈퍼맨 죽다"와 "슈퍼맨 살아나다"란 헤드라인이 각각 1면에 실린 신문 판본 2개를 뽑아놓고 대기를 하는데, 현실적인 장면이다. 물론 실제로는 신문 전체를 다 뽑지는 않고 1면만 프린트해서 보겠지만. 그러다보니 이런 기사를 실수로 송고해 엄청난 오보를 내는 경우가 드물게 생긴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2008년 8월에 [[스티브 잡스]]의 부고 기사를 실수로 올려버린 해프닝이 있었으며, 잡스는 다음달 열린 애플 키노트에서 "제 죽음은 매우 과장되었습니다.(The reports of my death are greatly exaggerated.)"라는 슬라이드와 함께 발표를 시작했다.(이는 마찬가지로 사망 오보를 받아본 다음날 기고된 [[마크 트웨인]]의 칼럼에서 나온 유명한 말) 다만 여왕과 차이점이라면 이때의 그는 비밀리에 재발한 암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블룸버그는 2022년에도 비슷한 사고를 쳤는데, [[우크라이나 위기]]가 워낙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보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보도를 미리 준비해놨다가 '''실수로 홈페이지 메인에 송고해버리는 바람에''' 몇 분간 전 세계가 뒤집어지는 일이 있었다. 러시아는 이 보도를 가지고 역시 서방 언론이 위기를 키우고 있다며 신나게 언플 수단으로 써먹었다.] 여왕이 고령이다 보니 "영국 사회가 여왕의 사망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0710111216172|나왔다.]] 2016년 12월, 독감에 걸린 여왕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감사성찬례]]와 신년 감사성찬례에 불참해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었으나 2017년 1월 8일 2주만에 왕실 가족과 함께 감사성찬례에 참례해 우려를 [[http://v.media.daum.net/v/20170109100245158|불식시켰다]]. * 2020년 11월 16일, 이번에는 [[프랑스]]의 공영 라디오 방송이 비슷한 실수를 [[https://www.yna.co.kr/view/AKR20201117111500009|저질렀다.]] 이번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뿐만이 아니라 해외 각국의 유명 인사들도 사망 명단에 대거 포함되어 있었으며, 사망 원인은 무려 [[코로나19]]로 내보내졌다고 한다. 해당 방송사는 허겁지겁 기사를 내리고 사과했다. || [[파일:external/www2.pictures.zimbio.com/Horses+Carriages+Prepared+Diamond+Jubilee+UUjcx2zFIjzl.jpg|width=35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2_Bentley_State_Limousine_rear.jpg|width=360]] || || [[파일:external/i.usatoday.net/wiliamx-large.jpg|width=35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ar_Queen_Elizabeth_II_wedding_Prince_William_Kate_Middleton.jpg|width=360]] || ||<-2> 관용차로는 특수 제작된 [[벤틀리]]를 탄다.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이라고 불린다.[* 이 차량은 엘리자베스 2세를 위해 특별제작한 차량이다. 타고 내릴 때 무릎과 허리를 굽히지 않게끔 맞춤제작되었다. 그러므로 일반 벤틀리보다 차체가 훨씬 높은 편인데, 거의 성인 키 정도 된다.][* 이 컬러로 칠해져서 한정판으로 판매된 [[벤틀리 플라잉 스퍼]]도 있다.] || || [[파일:로버 P5B 엘리자베스 여왕 자가용.png|width=100%]] || || 엘리자베스 여왕의 소유 자가용이던 [[로버 P5B|{{{#000,#FFF 로버 P5B}}}]] || * 오랜 기간 전용차량으로 [[롤스로이스]]에서 특별 제작한 차량을 타다가 2002년 즉위 50주년인 '골든 주빌리'를 기념하여 [[벤틀리]]에서 새로 제작, 납품한 전용차량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을 탄다. 길이만 6.2 m에 차체 높이는 1.77 m로 리무진 차량 중에서도 대형인데, 이는 군주가 차량에 타고 내릴 때 고개를 숙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이자 국민들이 차량에 탑승한 군주를 잘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설계로, 일본 등 다른 입헌군주국에서도 관찰된다. 방탄 및 방폭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부 가스 공격에 안전하도록 실링 처리가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뒷문은 뒤로 열리는 코치 도어로 되어 있고 여왕이 탑승 중일 때는 왕실 문장 표지를 달고 다닌다. 과거에 자가용으로 [[로버 P5B]]를 소유한 바 있으며, JGY 280이라는 번호판을 달았다고 한다. * 2015년 7월 18일, 1933년 어린 엘리자베스&마거릿 공주와 엘리자베스 왕대비가 [[나치식 경례]]를 하는 영상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었다. 물론 현재는 나치식 경례가 금기 중의 금기이지만, 그때는 [[나치즘]]이 [[악의 축]] 낙인이 찍히고 [[하켄크로이츠]]가 악의 상징이 되기 전이다.[* 1939년 초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첼시 서포터들이 [[유태인]]들이 주축인 토트넘 핫스퍼를 야유할 때 로마식 경례를 하거나 스바스티카 깃발을 흔들 정도였다. [[하켄크로이츠]]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미국]]이나 [[유럽]] 각지에서도 이 문장은 그저 행운의 상징으로써 1930년대까지 학교 심벌은 물론이거니와 [[미합중국 육군|미국 육군]] 제45보병사단의 부대마크, 심지어 [[소련]]도 [[http://transural.egloos.com/315499|스바스티카 낫과 망치 훈장]]같이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조합의 훈장을 1922년까지 썼다. [[핀란드 공군]]은 나치와 관계없는 전통 문장이라며 아예 아직도 스바스티카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2세는 '''겨우 7살'''이었고, 엘리자베스 2세는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다. 전쟁이 끝난 직후 독일어 책들을 두고 '''히틀러 나라의 말은 배우지 않겠다'''라는 말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다만 영상에서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례를 시키는 사람이 엘리자베스 2세의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여서, 그의 친나치 행보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 [[2016년]] [[6월 11일]], 여왕의 생일 공식 기념 행사에서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 나온 왕실 가족이 시민들의 축하를 받을 때, 장손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왕세손]]이 증손자 [[조지 알렉산더 루이|조지]]와 놀아주면서 앉아 있자, 손자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일어나라"고 핀잔을 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화제가 되었다.([[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60619090143731|#]]) * [[2016년]] [[3월 9일]]자 [[더 선]]이 '여왕이 브렉시트를 지지한다'고 1면에 기사를 냈는데, [[버킹엄 궁전]] 측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63년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며 해당 기사를 독립언론윤리위에 제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60311011705035|#]] 여왕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국이 유럽의 일부여야만 하는 이유 3가지를 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왕이 브렉시트를 두둔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이에 언론 규제 단체인 IPSO는 "<더 선>의 기사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misleading)"고 발표했지만, <더 선>은 "2명의 소식통을 통해서 여왕이 당시 부총리였던 닉 클레그한테 말했다"고 주장했다.[[https://www.independent.ie/business/brexit/i-dont-see-why-we-cant-just-get-out-queen-backed-brexit-in-runup-to-referendum-35320883.html|#]][[https://www.bbc.co.uk/news/uk-politics-36986977|##]] 닉 클레그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마이클 고브가 <더 선>에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한 소식통 중 한 명이라고 지적했으나, 마이클 고브는 대답하기를 거절했다. 닉 클레그는 여왕이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일개 부총리한테 이런 중대한 사건에 대해 논평을 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대답하면서, 더 선의 주장을 보증해주기를 거절했다. * 영국의 대표 보수 언론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은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http://www.dailymail.co.uk/debate/article-4069534/EPHRAIM-HARDCASTLE-Queen-s-Brexit-support-saving-Commonwealth.html|#]] 데일리 메일의 왕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여왕 사후 왕위 계승 1위 후보인 [[찰스 3세|찰스 왕세자]]는 오래 왕위에 있지 못할 것이고, 이후 2위 후보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가 왕좌에 앉을 것이 분명하며, 윌리엄은 EU 체제 내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연방 왕국]]을 유지하는데 그의 할머니 만큼 열성적이지 못하다."라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데일리 메일은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영연방 복귀 없이는 자신의 사후 영연방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 2015년 6월 24일 [[독일]]을 정식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의 연설에도 관심이 집중되었다.[[http://www.telegraph.co.uk/news/uknews/queen-elizabeth-II/11697233/Queen-wades-into-Europe-debate-as-she-says-division-is-dangerous.html|#]]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과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참석한 회담에서 여왕은 "유럽의 분열은 우리 모두에게 위험하다."라고 경고했으며, "우리 영국은 유럽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핵심층"이라며 영국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매우 가까운 외교 관계를 유지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 2017년 6월 21일 국왕의 칙유 발표를 위해서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의 모자에 관심이 집중됐다.[[https://imgur.com/1gXfRSd|#]] 이유는 모자가 유럽 연합기와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간접적으로 유럽 연합을 지지한다는 뜻을 비추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http://www.bbc.com/news/blogs-trending-40356113|#]] 지난 몇 년 간 본 행사에 흰색 드레스를 고수해 왔기에 이러한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 2019년 5월 19일, 기밀이 해제된 독일 외교부 문서에 따르면, 여왕은 유럽연합의 전신 EEC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영국의 미래는 유럽에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19/may/19/the-queen-future-of-britain-in-europe-diplomatic-cables-germany|#]] * 1999년 호주 공화정 전환 국민 투표와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등으로 지위에 위기를 맞기도 했으며, 브렉시트 이후 스코틀랜드의 불안정이 다시 지위에 충격을 주고 있다. * [[영국 파운드]]와 영국 속령에서 사용하는 지폐의 모델이다. 또한 [[호주 달러]]와 [[캐나다 달러]], [[뉴질랜드 달러]] 지폐와 동전의 모델이다. [[파일:external/images.mentalfloss.com/qe10_0.jpg]] [[http://mentalfloss.com/article/52759/15-international-banknotes-show-queen-elizabeth%E2%80%99s-aging-process|여기]]로 가보면 종류별로 다 있다. 심지어는 '''어린 시절 사진이 지폐 모델이 된 것'''도 있다. * [[견과류]]를 매우 좋아한다. 2013년 12월 13일경 영국 언론지 now의 불법 도청 사건에 대한 재판이 열린 적이 있었다. 이 때 법정에 증거자료로 제출된 이메일 내용에 적혀 있던 일화가 있다. 왕실 직원들이 여왕을 위해 준비한 땅콩, 아몬드, 캐슈넛 등의 견과류를 항상 궁전 복도에 놓아두는데, 순찰 중인 경찰들이 너무 많이 집어먹어서 여왕이 화가 났다고 한다. 여왕은 그릇에 줄을 그어서 표시한 후 '''내 땅콩에서 그 끈적거리는 손을 치우라'''는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영문 표현 중 Sticky finger(hand)는 도벽이 있는, 내지는 슬쩍하길 좋아하는 이를 일컫을 때 쓰는 표현이다. 즉 여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꺼 훔치지 마라!"란 경고를 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초콜릿]]도 좋아해서, 주변 사람이 말리지 않으면 한 접시 정도는 다 먹을 수 있다고 한다. * 2019년에 여왕이 한때 거주하던 빌라가 고급 부동산 중개업체에 매물로 등장했다. 몰타에 있는 이 빌라 매매가는 600만 유로(약 80억 4,000만 원)로 책정됐다. 해당 빌라는 여왕이 결혼 초기 필립 공이 몰타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하던 1949년부터 1951년까지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 [[영국]]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여왕도 예방적 차원에서 예정보다 1주일 앞당겨 [[런던]]을 떠나 [[윈저 성]]으로 옮겼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318/100210785/1|#]] *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지만, 딱 한 번 [[영국 총리]]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1978년]]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총리였던 제임스 캘러헌과 외무장관이었던 데이비드 오언은 차우셰스쿠를 '''좋은 공산주의자'''라 얘기하며 엘리자베스 2세에게 버킹엄 궁전으로 초대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여왕도 이를 승인하였다. 문제는 차우셰스쿠가 영국 방문 직전 방문한 [[프랑스]]에서 터졌는데, 차우셰스쿠와 그 일행이 도청장치가 있는지 확인한답시고 영빈관의 전깃줄과 전화선을 까 뒤집는 것도 모자라 각종 '''공예품을 절도했던 것이다.''' 당연히 어처구니가 없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이 미리 엘리자베스 2세에게 이를 귀띔해 주었고, 여왕은 궁전의 관리인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어 루마니아 사절단의 도벽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우셰스쿠는 이것 이외에도 "도청장치를 두려워한다"는 명목으로 아침 일찍 궁전 잔디밭에서 회의를 한다던가, 여왕과 악수한 직후 바로 '''면전에서 손을 소독하는 등'''의 결례를 저질렀다. 일단 앞에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차우셰스쿠가 귀국하자마자 폭발한 여왕은 [[제임스 캘러헌]] 총리와 오언 외무장관을 호출한 뒤 '''"어떻게 초대해도 저런 인간을 초대할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라며 매우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이는 현재까지 엘리자베스 2세가 보인 전례없는 총리와 장관에 대한 분노 표출이자 문책이었는데, 즉위 직후부터 가급적이면 총리와 내각의 정책에 대해 언급을 사양하며 정치적 행보를 최소화했던 엘리자베스 2세가 이처럼 총리에게 화낸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고 하며 참고로 캘러헌 총리와 여왕의 나이차는 15살 차이이다. 그 정도 나이차라면 아무리 주군인 여왕이라도 총리에게 화를 내기는 힘들었을텐데 그만큼 크게 분노했을 정도로 [[차우셰스쿠]]가 얼마나 답이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무례함과 결례를 벌인 차우셰스쿠는 국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끔살된 반면 여왕은 천수를 누리다 영면하였으니 사필귀정이라 하겠다.] * [[영국 여권]] 문서에도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엘리자베스 2세에게는 여권이 없다. 이는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모든 여권은 국왕의 이름으로 발행되는데, 군주인 국왕이 여권을 소지하는 것은 엄연히 신하인 외교부 장관에게 여행 가도 되냐고 허락받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일본도 똑같아서 [[천황]]도 여권이 필요 없다. 영국처럼 군주가 신하인 [[일본 외무성|외무대신]]에게 허락을 받는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일본 여권]] 문서 참조. 물론 영국이나 일본이나 군주 이외의 왕족/황족은 여권이 필요하다.[* 반면 [[대통령 중심제]] 국가들에서는 대통령도 여권이 필요하다. 공화정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국민의 선출을 받는 까닭으로, 가령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고용주가 재계약이 불가능한 5년 단기 계약직으로 계약한 것이며 신분제 국가가 아니므로 외교부 장관도 신하가 아니라 그냥 직장 부하직원이므로 대통령도 외교부 장관의 직인이 찍힌 여권이 필요하다.] * 모계로 [[이슬람교]]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쟁이었지만, 요약하자면 [[스페인]]의 [[알폰소 6세]]의 첩 혹은 부인인 세비야의 자이다 공주[* 술탄인 이븐 아바드의 딸로 [[무라비트 왕조]]한테 세비야가 함락되자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한테 도망가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이사벨로 개명한 뒤 알폰소 6세와 결혼했다.]가 거슬러 올라가면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후손이라는 것. 그리고 스페인 왕족들과 영국 왕족들의 결혼으로 그 피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180412152800009|관련 기사]], [[https://www.fmkorea.com/best/3164534461|가계도]] * 애완견은 원래는 코기를 키우다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개 입양을 하지 않고 있다. 도기(dorgi)종 애완견인 '벌컨(Vulcan)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서 '캔디'라는 이름을 가진 도기종 애완견 1마리만 남게 됐었는데, 2021년 3월 필립 공이 세상이 떠나기 전 '퍼거스(Fergus)'[* [[제1차 세계 대전]] 중 전사한 여왕의 외삼촌 퍼거스 보우스라이언의 이름으로부터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장병으로 같은 해인 생후 5개월 만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라는 도기와 '믹(Muick)' 라는 코기를 분양받았다고 한다. 필립 공이 사망한 이후 [[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 에드워드|앤드루 왕자]], [[베아트리스 엘리자베스 메리|베아트리스 공주]], [[유지니 빅토리아 헬레나|유지니 공주]]가 몇 마리의 코기들을 여왕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여왕이 사망한 이후, 앤드루 왕자가 선물한 믹(Muich)과 샌디(Sandy)라는 코기는 앤드루 왕자와 [[사라 퍼거슨]]이 키우기로 했다. 이 두 마리의 코기들은 여왕의 장례식에서 잠깐 밖으로 나와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도 했다. * 과거 자신의 사유 재산을 대중에 공개하지 않으려고 관련 법안의 초안을 수정하기 위해 대정부 로비를 벌여 이에 성공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190591?sid=104|#]] 찰스 왕세자와 같이 1천 건이 넘는 법안을 의회보다 먼저 받아보고 '검열'한 것으로 밝혀졌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193107?sid=104|#]] *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의 장례식 때 직계 자손들이 남편의 관을 따라 행진하는 동안 차를 타고와서[* 이때 여왕과 같이 차에 타고 있던 여성이 영국에서 화제가 됐는데, 해당 인물은 여왕의 개인 비서인 수잔 허시(Susan hussey) 여사다.]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기다렸는데 "마스크를 쓰고 홀로 앉아있는 모습이 배우자를 먼저 보낸 이의 슬픔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이 많았다. * 모국어인 [[영어]] 말고도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uxQpdHz7t2o|프랑스 상원 연설]]을 보면 영어 억양 때문에 원어민스럽지는 않지만 상당한 실력을 갖췄음을 알 수 있다. * [[마릴린 먼로]]와 만난 적이 있다.[[https://m.youtube.com/shorts/F2muCPS9Gjk|#]] 1956년, [[영국]]에서 할리우드와 유럽 영화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만났다고 한다. 영상에서 서로 마주보며 악수를 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데 둘은 1926년생 동갑으로 굉장히 묘한 느낌이 든다. 또한 젊은 시절 여왕의 모습도 볼 수 있다. * 말(馬)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무려 '''4세부터''' 선물받아서 승마를 시작하였으며, 아침식사 때는 영국 경마 신문지인 레이싱 포스트(Racing Post)를 항상 끼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또 [[경마]] 매니아로도 유명하고 '''경마 마주'''로도 유명한데, 실제로 보라색/빨간색/검정색 색상의 왕가의 승부복이 따로 있을 정도로 애착이 대단하고, 심지어 왕가의 이름을 단 G1 대회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고령 및 코로나 시국 등 건강 문제로 인하여 못하고 있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말이 G1에서 이긴다면 엄청나게 환호하기도 하며[* 대표적인 사례론 2013년 애스콧 골드컵(G1)에서 소유마가 우승했었을 때로 [[https://www.youtube.com/watch?v=HZ5fkUCwv9I&feature=emb_title|당시 카메라에 포착되었던 걸로 유명하다.]]], 말을 다루는 능력도 심상치 않은 것인지 직접 고삐를 당길 수 있을 정도로 팔 힘도 강했다고 한다. 영국 5대 클래식 중 '''엡섬 더비를 제외하고'''[* 애시초 원조 더비인 해당 경주는 처칠이 한 나라의 재상이 되는 것보다도 우승 트로피를 쟁취하기 힘든 경주로 역대 영국 왕실 소유마 중에서도 더비마가 탄생하지 못했을 정도다.] 다 우승 경력이 있으며 영국 및 유럽 주요 대회 우승 경력도 있다. 종마에서도 여왕의 소유마들이 크게 활약하였다.[[https://m.dcinside.com/board/umamusme/996233|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대 주요 수요마]] 거기에 사망 이틀 전에도 현역마 중 월드클래스인 [[플라이트라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녔다고. 여왕 사후 손녀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레이디 루이즈 윈저]]와 증손녀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웨일스의 샬럿 공녀]]는 생전 말을 좋아했던 여왕을 기리기 위해 말과 관련된 악세사리를 착용하고 장례식해 참석했으며, 여왕의 말인 엠마는 장례식에서 잠깐 밖으로 나와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도 했다. * [[닌텐도 Wii]]을 좋아하며 플레이하는 걸 즐긴다고 한다. 손자며느리 [[캐서린 미들턴]]이 손자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윌리엄 왕세손]]에게 선물한 Wii을 좋아해서 결국 여왕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볼링]]을 좋아하며 매우 잘 한다고 한다. *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이 컴퓨터로 편지를 쓰고, 연설문 원고를 작성할 때 인터넷과 이메일을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오랜기간동안 전자기기 대신 종이와 펜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러나 손주들과 문자를 주고 받기 위해 핸드폰을 구매했으며, 2005년에는 아들 [[앤드루 왕자]]의 제안을 받고 [[아이팟]]을 구매하기도 했다. * 의외로 좋아하는 영화가 [[플래시 고든]]이다. * 2003년 [[버킹엄 궁전]]에 고용인으로 잠입했던 [[데일리 미러]] 기자 라이언 패리에 의해 여왕의 TV 프로그램 취향이 공개된 적이 있다. 당시 여왕은 [[BBC]]에서 방영하는 연속극 '이스트 엔더스'와 웃긴 영상을 소개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커스티스 홈 비디오'를 즐겨봤다고 한다. *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에게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50723.html|캐비지(cabbage)]]라는 애칭으로도 불렸었다고 한다. 윌리엄 왕세자는 어린시절 할머니(granny) 발음이 안돼서 개리(Gary)라 불렀고 조지 왕자, 샬럿 공주, 루이 왕자는 유아기때 증조할머니를 갠갠(Gan-Gan)이라 불렀다 한다. * 한국의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밈으로도 유명한데 [[박지성]]을 찬양하는 만화책 '꿈을 향해 뛰어라'에서 그녀가 박지성을 보고 "나의 기사로 삼고 싶다."라고 언급했다는 내용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2000년대 말에 인터넷에서 한 블로거가 지어낸 말을 작가가 진짜인 줄 알고 인용한 것이다. 이것이 발굴되고 나서는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축구 커뮤니티에서 밈으로 사용되었다. * 1983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살해당할 뻔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https://m.yna.co.kr/view/AKR20230526156900009?section=international/al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